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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은 언제부터 일반화 됬는가 - 조선 초기 시전행랑 유구 by 천하귀남

온돌이 언제부터 일반화된 것인지는 좀 애매한 구석이 많습니다. 다행한것은 최근 종로지역을 재개발하면서 피맛골 인근의 시전행랑과 뒤쪽의 민가등에서 많은 온돌 유적이 나왔다는 부분입니다.


종로 교보문고 옆을 보면 이런 한옥지붕 하나가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면 이렇게 유리가 깔려 아래쪽을 보여주는데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시전행랑의 지층들입니다.


중요한것은 이미 15세기(세종대왕시절)부터 온돌이 나온다는 부분입니다. 다른 시설도 아닌 상업시설인 시전행랑에 온돌이 설치되 있다는 부분도 의미가 있습니다. 시전 행랑이 한두채도 아닌 가로에 쭉 늘어서 있는데 이렇게 많이 설치되 있다면 당연히 여기에 연료를 제공하거나 온돌을 만들고 고치는 등 하나의 산업구조가 완비됬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참고로 온돌은 여기만 나온것이 아닙니다. 인근 청진동등의 민가 건축에서도 온돌이 확인되고 시청건립 과정에서 나온 군기시유적에서도 온돌이 나왔습니다. 물론 조선 전기의 온돌은 집 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적기는 합니다. 하지만 많은 수의 건물에 채용되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한양이라는 특성상 전국 각지에 온돌을 알렸을겁니다. 

그렇게 보면 이미 임진왜란 이전에 온돌은 전국에 알려졌고 이후로 이러저런 일로 집을 고치거나 새로지을때 온돌로 시공된 경우가 많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만... 입식위주 바닥이 낮은 고려식 건축의 경우 온돌시공에 그리 적합하지 못하니 엄청나게 개조/훼손당하는것은 어쩔수 없었겠지요.

생각해 보면 온돌은 한국 주거시설 건축의 절대적인 특징이고 현재 까지도 살아남아있습니다. 제대로 시공된 경우 낙엽 서너뭉치로도 밤을 보낼 수 있으니 그만큼 효율적인 난방체계입니다. 실내에 연기나는 화덕을 두거나 비싸고 화재위험도 높은 숯으로 난방하기 보다는 가연성 연료면 낙엽이던 잔가지던 그리 많이 소비하지도 않는 온돌은 참 유용하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임란이후 삼림 황폐화의 원인이 온돌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건 난방용 이전에 건축목적의 도벌이 원인이라는 말도 있으니 여러모로 생각할 구석도 있지 않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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